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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참마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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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참마속
泣斬馬謖
울면서 마속을 베었다는 뜻으로, 기강을 세우기 위해 사사로운 감정을 버리고 법을 따른다는 말입니다.
읍참마속은 중국 삼국시대 촉나라(蜀)의 군사(軍師) 제갈량(諸葛亮, 181~234)이 군령을 어긴 마속(馬謖, 190~228)을 울면서 처형한 고사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촉을 건국한 유비가 죽고 태자 유선(劉禪, 재위 223~263)이 즉위하자, 제갈량을 무향후(武鄕侯)로 봉했습니다. 유선은 17세의 어린 나이여서, 제갈량이 유비의 유지를 받들어 정치를 보좌했습니다. 제갈량은 오나라(吳)와 평화 조약을 맺었고, 오나라는 얼마 후 위나라(魏)와 외교 관계를 단절했습니다. 228년, 제갈량은 군사를 거느리고 북쪽의 위나라를 공격하였는데, 기산(祁山) 벌판에서 사마의(司馬懿)의 20만 군대와 대치하게 되었습니다. 제갈량은 사마의의 진영을 돌파할 전략을 세워 놓았지만, 마음에 걸리는 곳이 한 곳 있었습니다. 바로 식량 보급로의 요충지 가정(街亭)을 지키는 문제였습니다. 그곳을 적에게 빼앗기면 군사를 움직일 수 없기에, 가정 수비는 제갈량의 커다란 숙제였습니다. 그때 가정을 지키겠다고 나선 사람이 마속이었습니다. 마속은 제갈량의 절친한 벗인 마량(馬良)의 동생으로, 재주와 능력이 뛰어나 제갈량은 그를 매우 아꼈습니다. 촉나라를 괴롭혔던 맹획(孟獲)을 죽이지 말고 사로잡아 남쪽을 안정시키자는 계책도 그의 머리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나 마속은 사마의를 대항하기에는 아직 어렸고, 경험도 많이 부족했습니다. 전투 경험이 많은 위연(魏延), 오일(吳壹) 등 대다수의 장수는 의령(宜令)을 선봉으로 삼아야 한다고 건의했습니다. 하지만 마속의 탄원이 간절했으므로, 제갈량은 다수의 의견을 따르지 않고 마속을 선택했습니다. 대신 제갈량은 마속에게 3면이 절벽인 가정의 산기슭을 지키라고 명했습니다. 그러나 혈기왕성한 마속은 제갈량의 명령을 어기고 산꼭대기에 진을 쳤습니다. 결국 마속은 위나라 장수 장합(張郃)에게 패배하여 군대가 흩어졌고, 마속은 겨우 살아 돌아왔습니다. 제갈량은 결국 식량 보급이 끊길 것을 우려해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고, 한중(漢中)으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옥에 갇힌 마속은 임종에 앞서 제갈량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공께서는 저 보기를 자식처럼 대해 주시고 저 역시 아비처럼 대했습니다. 평생의 교제를 여기에서 어긋나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비록 죽더라도 여한이 없습니다.” 이때 마속의 나이는 39세로 제갈량은 한없이 눈물을 흘렸고[泣斬馬謖] 촉나라 군사들도 모두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후 한중에 도착한 장완(蔣琬)이 제갈량에게 물었습니다. 장완: 천하가 결정되지 않았는데 지혜로운 선비를 죽인 것은 애석하지 않습니까?” 제갈량: 손무가 ‘승리하는 것은 법을 분명히 시행하기 때문이다’라고 했소. 천하가 분열되어 전쟁하고 있는 마당에 법을 제대로 시행하지 않으면 어떻게 적을 토벌하겠는가. 사사로운 감정을 버리고 법을 따르는 것은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데 필수적이며, 명령의 효력을 높이는 기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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