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성어!
이정도는 알아두면 이해하기 쉬워요.
고사성어는 옛날에 일어났던 역사적인 일이나, 역사적인 일에 비유로 사용되었던 일화, 우화, 속담 등이 옛사람들에 의해 일상에서 자주 쓰이는 관용어로 정착된 단어를 말합니다. 예를 들면 천군만마(千軍萬馬), 오리무중(五里霧中), 결초보은(結草報恩)과 같은 성어들입니다. 한편 복지부동(伏地不動), 신토불이(身土不二), 삼한사온(三寒四溫)과 같이 흔히 사용하는 관용어지만 고사에 바탕을 두지 않고 단지 한자를 조합해 만든 성어는 고사성어라 할 수 없습니다.
고사성어의 성립 시기
고사성어의 상당수는 중국 춘추전국시대를 배경으로 생겨났습니다. 특히 백가쟁명(百家爭鳴) 또는 제자백가(諸子百家)의 시대라고도 불리는 전국시대에는 각각의 논리로 무장한 제자백가들이 이 나라 저 나라를 돌아다니며 유세하면서 위정자들을 상대로 자신의 논리를 분명하게 내세우기 위해 역사적 사건이나 일화, 우화, 속담 등을 근거로 설득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제자백가나 위정자들 자체도 온갖 사건들을 겪으며 수많은 고사성어의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이처럼 고사성어는 중국에서 일어난 역사적인 일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경우가 대다수이지만, 삼마태수(三馬太守), 견금여석(見金如石)처럼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던 역사적인 사건을 배경으로 형성된 고사성어도 제법 많습니다. 또한 모르긴 해도 같은 한자 문화권인 일본에서 만들어진 고사성어도 있을 터입니다.
고사성어의 글자 수
고고사성어는 두 자의 계륵(鷄肋, 세 자의 미망인(未亡人)처럼 두세 자의 글자 조합부터 시작해 과전불납리 이하부정관(瓜田不納履 李下不正冠)처럼 열 자가 넘는 경우도 있지만, 오월동주(吳越同舟)처럼 가장 많은 조합은 네 자로 구성된 경우입니다. 한자는 주어+서술어, 서술어+목적어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아서 네 자로 이루어졌을 경우 간결하면서도 풍부하게 의미를 전달할 수 있으므로 네 글자로 구성된 경우가 제일 많습니다.
고사성어의 시대들
춘추시대(春秋時代)
춘추시대는 중원을 차지하고 있던 주나라(周)가 이민족의 공격으로 수도를 오늘날의 장안(長安)인 호경(鎬京)에서 동쪽의 낙양(洛陽)으로 천도한 시점부터 진나라(晉)가 한(韓)・위(魏)・조(趙) 3국으로 갈라져 전국시대가 성립하기 전까지의 시기를 말합니다. 춘추라는 명칭은 공자(孔子)가 저술한 『춘추(春秋)』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주나라가 안정적으로 통치되는 시기에는 천자가 직접 관할하는 왕기(王畿)를 바탕으로 제후국들을 압도하는 군사력과 경제력 덕분에 제후들을 원만하게 통제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원전 771년 호경이 이민족에게 함락되고 유왕(幽王)이 살해되자, 수도를 탈환할 힘을 상실한 주나라는 어쩔 수 없이 동쪽의 낙양으로 천도하는데, 이때부터를 춘추시대라 부릅니다. 그리고 춘추시대 이전과 이후를 구분하기 위해 천도 이전을 서주(西周)로, 천도 이후를 동주(東周)로 구분해 칭합니다.
이제 주나라는 전처럼 경제력이나 군사력으로 제후들을 압도하지 못함으로써 천자의 권위는 실추되었습니다. 더욱이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던 정나라(鄭)의 군주 장공(莊公)이 주나라 환왕(桓王)과의 갈등으로 환왕이 주재하는 조회에 참석하지도 않고 조공도 바치지 않자, 기원전 707년 가을 환왕은 실추한 천자의 권위를 회복하고자 제후국의 군대를 연합해 직접 정나라 정벌에 나섰지만 대패하고 주나라의 허약함만 만천하에 드러냈습니다.
이후 주나라는 춘추시대 내내 강대국의 도움을 받아 겨우 명맥을 이어가고 제나라(齊) 환공(桓公), 진나라(晉) 문공(文公), 초나라(楚) 장왕(莊王), 송나라(宋) 양공(襄公), 진나라(秦) 목공(穆公)과 같이 당대의 제후들을 통솔하고 회맹을 주도하는 실력자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을 ‘춘추오패(春秋五霸)’라고 부릅니다. 물론 사람들 사이에 춘추오패 선정이 통일된 것은 아닙니다.
시간이 갈수록 제후들 간의 세력 다툼은 격화되고 신하 중에도 군권을 능가하는 세력이 등장하면서 더욱 더 복잡한 양상을 띠는데, 특히 진나라(晉)의 육경(六卿)이 군주권을 무력화하여 실권을 장악한 후 자신들끼리 암투를 벌여 끝내 한(韓)씨・위(魏)씨・조(趙)씨 세 가문이 연합하여 가장 강했던 지(智)씨 가문을 무너뜨리고 지씨의 영토를 분할해 차지하는데, 이 이후부터 진나라(秦)가 통일하기 전까지를 전국시대(戰國時代)라고 부릅니다.
전국시대(戰國時代)
전국시대는 진나라(晉)의 한(韓)씨・위(魏)씨・조(趙)씨 세 가문이 연합하여 가장 강력했던 지(智)씨 가문을 무너뜨리고 자신들의 봉지와 나눠가진 지씨의 영토를 바탕으로 각각 한(韓)・위(魏)・조(趙)를 건국한 이후부터 진나라(秦)가 통일하기 전까지의 시기로, 기원전 475년부터 기원전 221년까지의 시기를 가리킵니다. 물론 사람들 사이에서는 전국시대의 기간에 대해 다소의 편차가 있습니다.
여하튼 이 시기는 각국이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춘추시대보다 훨씬 치열하고 끊임없이 전투를 벌였기 때문에 후대에 ‘전국시대’라고 불렀는데, 서한(西漢)의 왕족이자 역사가인 유향(劉向)이 편찬한 『전국책(戰國策)』에서 따온 용어입니다.
전국시대는 각국이 부국강병을 추구하면서 강력한 군주권 확립과 중앙집권 강화를 꾀하던 시기로, 철기의 대량 보급에 따라 군사력을 강화한 국가 간에 대규모 전쟁이 끊임없이 벌어졌고 그에 따라 약소국은 급속도로 병합되거나 소멸되어 몇몇 소국이 잔존하기는 했지만 진(秦), 한(韓), 위(魏), 조(趙), 초(楚), 제(齊), 연(燕)의 7개 큰 나라로 정리되는데, 이를 ‘전국 7웅(雄)’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들 국가들은 군사력만 강화한 것이 아니라 부국강병을 위해 다양한 정치 논리를 경청하고 받아들임으로써 수많은 논리가 출현하고 수많은 사상가들이 등장하니, 우리는 이 시기를 ‘백가쟁명(百家爭鳴)의 시대’ 또는 ‘백화제방(百花齊放)의 시대’라고 달리 부르기도 합니다.
또 7개의 나라 중에는 서쪽의 진이 동쪽의 여섯 나라에 비해 국력이 강하다 보니, 외교적으로는 진을 상대로 6국이 연합하자는 ‘합종(合縱)’과 이 구도를 깨고 진과의 연합을 도모하게 하려는 ‘연횡(連橫)’ 정책이 유세가들의 혀를 통해 끊임없이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기원전 230년 한이 진에 병합되었고 이후 조, 위, 초, 연이 차례로 진에 병합되었으며, 기원전 221년 마침내 진나라 군대가 제의 도읍 임치(臨淄)를 포위해 멸망시킴으로써 길었던 전국시대는 막을 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