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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명산
藏之名山
명산에 보관한다는 뜻으로, 가치 있는 저술을 후세에 길이 남긴다는 말입니다.
장지명산은 사마천(司馬遷, B.C. 145~B.C. 86)이 한 무제(武帝) 때 무장 이릉(李陵, ?~B.C. 74)을 변호하다 궁형을 받고 다시 태사령(太史令, 천문관측과 의례를 기록하는 직책)이 되어 『사기(史記)』를 저술하던 중, 무고(巫蠱) 사건에 연루되어 사형을 앞둔 임안(任安)에게 보낸 편지 보임안서(報任安書)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임안의 편지를 받은 사마천이 그에게 다음과 같은 답장을 보냈습니다. "옛날부터 부귀영화를 누렸지만 잊힌 사람은 많고, 기개 있는 인물만이 이름을 남겼습니다. 오로지 기개 있고 비상한 인물만이 이름이 알려졌을 뿐입니다. 서백(西伯, B.C. 1152~B.C. 1056. 주 문왕)은 갇힌 몸으로 『주역(周易)』을 풀이했고, 중니(仲尼, 공자, B.C. 551~B.C. 479)는 곤경 속에서 『춘추(春秋)』를 지었습니다. 굴원(屈原, B.C. 343~B.C. 276, 전국시대 초나라 정치가)은 조정에서 쫓겨나 『이소(離騷)』를 썼고, 좌구(左丘, B.C. 556~B.C. 451, 노나라의 역사가)는 실명한 뒤 『국어(國語)』(춘추시대 역사서)를 저술했습니다. 손자(孫子, 손무, B.C. 544~B.C. 470?)는 발이 잘린 채 『병법(兵法)』을 편찬했고, 여불위(呂不韋, ?~B.C. 235, 진나라 재상)는 촉(蜀)으로 유배되어 『여씨춘추(呂氏春秋)』를 세상에 알렸습니다. 한비(韓非, B.C. 281~B.C. 233)는 진나라(秦) 옥에서 「세난(說難)」과 「고분(孤憤)」을 썼고, 『시경(詩經)』의 300편 시는 대부분 성현들이 어려운 처지에서 지은 것입니다. 이들은 모두 가슴 속에 맺힌 것이 있었지만,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없었기에 지나간 일을 서술하여 후세 사람들이 자신의 뜻을 알아주기를 바랐습니다. 좌구가 눈이 멀고 손자가 발이 잘리는 등 등용될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물러나 책을 저술하여 자신의 억울함을 풀고, 그 글을 후세에 남겨 자신의 생각이 천하에 드러나기를 바랐습니다. 저 또한 재능 없는 글솜씨로 천하의 흩어진 옛 기록들을 수집하여 일어난 일들을 대략 살피고, 원인과 결과를 종합하여 성패흥망(成敗興亡)의 실마리를 헤아려 총 130편을 만들었습니다. 또 하늘과 인간의 관계를 탐구하고 고금의 변화를 통찰하여 문장으로 일가를 이루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초고를 다 쓰기도 전에 화를 당했지만, 작업이 완성되지 못할 것을 안타까워하여 극형을 당하고도 분노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진실로 이 책을 저술하여 명산에 보관하고[藏之名山], 내 뜻을 알아줄 사람에게 전하여 세상에서 읽히게 한다면, 이전에 받은 치욕을 보상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비록 만 번 죽임을 당한다 해도 어찌 후회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 일은 지혜로운 사람에게는 말할 수 있지만, 속인에게는 말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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