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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합지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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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합지졸
烏合之卒
까마귀 떼처럼 모인 군사라는 뜻으로, 까마귀 떼처럼 흩어졌다 모였다 하며 통솔력 없이 싸움만 벌이는 보잘 것 없는 군대를 이르는 말입니다. 비슷한 말로 오합지중(烏合之衆), 와합지졸(瓦合之卒)이 있습니다.
오합지졸은 삼국시대에 위나라(魏)와 촉나라(蜀)가 조서(洮西)에서 벌인 전쟁에서 위나라가 참패했을 때, 당시 위나라 병사들의 상황을 묘사한 데서 유래하였습니다. 255년, 촉나라 장수 강유(姜維, 202~264)는 조서에서 위나라 옹주자사(雍州刺史) 왕경(王經, ?~260)을 크게 물리쳤습니다. 왕경은 남은 군사를 이끌고 적도(狄道) 성 안으로 피신했고, 촉나라 군대는 적도성을 포위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위나라 조정은 진태(陳泰, ?~260)를 지원하기로 결정하고, 정애(鄭艾, 197~264) 등이 이끄는 지원군을 보냈습니다. 정애는 군영에 도착하여 장수들에게 말했습니다. “왕경의 정예병이 서쪽 변경에서 패했으니, 적의 사기는 더욱 올라 감당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게다가 장군들은 까마귀 떼처럼 모인 군사[烏合之卒]로 패배한 군사들과 함께하니, 군사들의 사기는 떨어지고 농우(隴右) 지역은 동요하며 불안해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위나라 군대는 촉나라 군대와 맞대응하는 것을 자제하며, 진태가 적도로 잠입하여 적도산에 봉화를 올리고 뿔피리를 불었습니다. 그러자 촉나라 군대에 포위되어 적도 성 안에 갇혀 있던 위나라 군사들은 환호했고, 반대로 먼 길을 달려온 강유의 군대는 위나라 구원군이 도착한 데다 식량마저 부족하여 결국 퇴각했습니다. 한편 이보다 앞선 후한 시대의 고사에서는 오합지졸과 비슷한 의미의 오합지중(烏合之衆)이라는 성어가 등장합니다. 유수(劉秀, B.C. 5~57)는 왕망(王莽, B.C. 45~23)이 세운 신(新)나라를 멸망시킨 후, 같은 왕족인 유현(劉玄)을 황제로 옹립했습니다. 그런데 한단(邯鄲)의 왕랑(王郞)이 자신이 성제의 아들 자여(子輿)라고 칭하며 군사를 일으키자, 유수는 그를 조벌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때 상곡(上谷) 태수 경황(耿況, ?~36)은 유수를 흠모하여 아들 경감(耿龕, 3~58)을 지원군으로 보냈습니다. 경감이 유수에게 가는 도중 왕랑이 군사를 일으켰다는 소식을 들은 경감의 부하 손창(孫倉)과 위포(衛包)가 왕랑에게 가려고 하자, 경감은 화를 내며 말했습니다. “왕랑은 남에게 해를 끼치는 적이니, 결국 항복하여 포로가 될 뿐이다. 내가 장안(長安)에 가서 어양(漁陽)과 상곡의 병사를 거느리고 와 돌격 기병대를 일으켜 보잘것없는 군사[烏合之衆]를 치는 일은 마르고 썩은 나무를 꺾는 것과 같이 쉬울 것이다. 너희들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것을 보니, 일족이 멸망할 날이 멀지 않았구나. 갈 테면 가라.” 손창과 위포는 경감을 따르지 않고 도망가 왕랑에게 귀순했습니다. 후에 경감은 유수를 도와 많은 공을 세워 건의대장군(建議大將軍)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유수는 천하를 평정하고 후한(後漢)을 건국했는데, 이가 바로 광무제(光武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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