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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렴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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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lrike M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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苛斂誅求
가혹한 세금 징수와 무리한 요구라는 뜻으로, 백성을 억압하는 행위를 이르는 말입니다.
가렴주구는 가혹하게 거둔다는 가렴(苛斂)과 사람에게서 강제로 재물을 빼앗아 간다는 주구(誅求)가 합쳐져 만들어진 성어입니다. 가렴은 『구당서(舊唐書)』 편찬자가 당나라(唐) [.tag.p]##헌종(憲宗)##의 총신이었던 [.tag.p]##황보박(皇甫鎛, ?∼820)##을 평가한 글에서 유래하였습니다. 820년 헌종을 이어 즉위한 [.tag.p]##목종##은 곧바로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 황보박을 애주사호(崖州司戶)로 좌천시켰는데, 『구당서』 편찬자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role=dialog] [verse] “이전에 헌종(憲宗)이 군사를 부림에 황보박을 발탁하여 재상으로 기용했는데, 그가 백성에게서 조세를 가혹하게 거두어[苛斂] 백성들의 원성이 자자했으므로 이때에 이르러 쫓겨났다.” 황보박은 이 해 12월 애주에서 죽었습니다. 주구(誅求)는 춘추시대 정나라(鄭)의 사신 [.tag.p]##자산(子産, ?~B.C. 522)##이 회맹(會盟)하러 간 진나라(晉)에서 자신들을 홀대하고 마차가 진입할 수 없는 숙소로 보내자 숙소의 담장을 부수고 들어간 사건에서 유래하였습니다. 노나라(魯) [.tag.p]##양공(襄公)##이 죽은 기원전 542년 6월, 정나라 집정(執政) 자산이 [.tag.p]##간공(簡公, 재위 B.C. 566~B.C. 530)##을 수행하여 진나라에 갔는데, 진나라 [.tag.p]##평공(平公, 재위 B.C. 558~B.C. 533)##은 노나라의 국상(國喪)을 이유로 간공을 만나주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자산은 사람을 시켜 그들이 묵을 객관의 담장을 허물고 말과 수레를 객관 안으로 들이게 했습니다. 진나라 관리 [.tag.p]##사문백(士文伯)##이 자산을 꾸짖어 말했습니다. [role=dialog] [verse] 사문백: 우리나라는 정사와 형벌이 제대로 시행되지 못해 도적이 많으니, 제후의 사절로 우리 군주를 뵈러 온 분들의 안전을 위해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관리를 보내 객관의 대문을 높이고 담장을 두껍게 쌓아 외국에서 온 사절들에게 도적의 근심이 없게 한 것인데, 지금 그대는 담장을 허물었습니다. 그대의 종자들은 경계를 잘하여 도적의 근심이 없겠지만 다른 나라의 사절들은 어찌하겠습니까? 우리나라는 회합의 맹주로서 외국에서 온 사절들을 잘 접대하려 했는데, 만약 담장을 다 허문다면 어떻게 물자를 요구하는 명을 받들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군주께서 나를 보내 담장을 헐라고 명한 까닭을 묻게 하셨습니다. 자산: 우리나라는 작은 나라로 큰 나라들 사이에 끼어 있다 보니 큰 나라의 요구가 수시로 옵니다[誅求]. 그러므로 감히 편안히 있지 못하고 우리나라의 공물을 다 모아 가지고 와서 뵈려 했는데 진나라 군주께서 틈이 없어 뵙지 못했습니다. 또 명을 받지 못해 언제 뵐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으니 감히 폐물을 진나라 창고로 보내드릴 수 없고, 햇볕에 방치하고 이슬을 맞힐 수도 없습니다. 만약 그대로 보낸다면 임금님의 창고를 채우겠지만 폐물을 바치는 의례를 거행하지 않았으니 감히 보낼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한데 쌓아두면 마름과 축축함이 적절하지 않아 썩거나 좀이 슬어서 우리나라의 죄가 무거워질까 두렵습니다. 제가 듣건대 진나라 문공(文公, 재위 B.C. 636~B.C. 628)께서 맹주가 되셨을 때는 궁실이 낮고 좁았으며 관망할 만한 누대가 없었지만, 제후를 접대하는 객관은 높고 크게 지어 그 객관이 오늘날 진나라 군주의 침소와 같았고, 객관의 창고와 마구간을 수리하고 길을 잘 닦아 두고서 제후의 사절이 당도하면 횃불을 설치하여 뜰을 밝히고 객관을 순찰하여 도적을 방비하였으며, 사절의 종자들을 대신해 노역하는 자가 있어서 수레에 기름 치고 말들을 관리하였으며, 관리들은 각각 맡은 물건을 가져와 사절을 접대하였고 문공께서는 사절을 즉시 접견하여 진나라 행정이 중지되는 일이 없게 하였으며, 걱정과 즐거움을 함께하였으므로 제후에게 일이 있으면 시찰하러 가서 알지 못하는 것은 가르쳐 주고 부족한 것은 도와주었으므로 사절이 진나라에 오는 것을 마치 자기 집에 돌아온 것처럼 여겼다고 하니 어찌 근심 걱정이 있었겠습니까? 도적을 두려워하지 않고 폐물이 건조하거나 젖을 것을 걱정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궁(離宮)인 동제궁(銅鞮宮)은 몇 리에 뻗쳐 있지만 제후의 사절은 하인의 거처 같은 곳에 머물게 하여 문은 좁아 수레가 들어갈 수 없고 담장은 높아 넘어갈 수 없으며 도적은 공공연히 날뛰고 때 없이 내리는 비를 방비할 수도 없는데, 사절을 접견할 날짜도 정하지 않고 언제 접견하겠다는 명을 내릴지도 알 수 없으니, 담장을 헐고 들어가지 않는다면 폐물을 저장할 곳이 없어서 우리의 죄가 무거워졌을 것입니다. 감히 진나라 군주께 묻겠습니다. 장차 우리에게 어떤 명을 내리려 하십니까? 군주께서 노나라의 국상때문이라고 하시지만 우리나라도 동성(同姓)이라 똑같이 근심하고 있습니다. 만약 폐물을 올리도록 허락하고 허문 담장을 수리하고 돌아가도록 하신다면 이는 진나라 군주의 은혜이니 어찌 감히 수고로움을 주저하겠습니까? 사문백이 돌아와 아뢰니, 그 자리에 있던 [.tag.p]##조문자(趙文子, ?~B.C. 541, 조무(趙武)를 말함)##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role=dialog] [verse] “그의 말이 옳습니다. 우리가 실로 부덕하여 하인이나 거처할 곳에 제후의 사절을 수용하였습니다. 이는 저의 잘못입니다.” 조문자는 사문백을 자산에게 보내 어리석은 처사를 사과했습니다. 진나라 군주는 정나라 간공을 접견하면서 정해진 등급보다 올려서 대우하고 잔치를 베풀어 우호를 다지고 돌려보냈으며, 제후를 접대하는 객관을 짓게 했습니다. 가렴과 주구는 후대에 합쳐져 백성을 괴롭히는 포악한 정치를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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