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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동벌이
黨同伐異
뜻이 같으면 무리를 짓고 뜻이 다르면 배척한다는 뜻으로, 자신과 뜻이 같은 무리만 편들고 다른 의견은 배척하는 태도를 이르는 말입니다.
당동벌이는 남조(南朝) 송나라(宋)의 범엽(范曄, 398~445)이 『후한서(後漢書)』를 편찬하면서 한나라(漢) 유교의 성립 과정과 그에 따른 학문의 변화 과정을 설명한 글에서 유래하였습니다. “한 고조(高祖)가 무력으로 천하를 평정하고 무장들이 대량으로 등장하면서 나라의 법령은 관대하고 느슨해졌으며, 예제(禮制)는 간소하고 헐거워졌다. 전국시대의 네 군자(신릉군(信陵君), 평원군(平原君), 춘신군(春申君), 맹상군(孟嘗君)을 말함)의 유풍을 계승하여 많은 자들이 군주를 찬탈하려는 마음을 품게 되자, 생사를 가볍게 여기고 충성을 중시하였으며 원망과 은혜는 반드시 갚고 법령은 개인의 집 마당에서나 행해졌으니, 권력은 미천한 평민의 손으로 넘어가 호걸의협(豪傑義俠)의 행위가 풍속을 이루었다. 무제(武帝) 이후에 유교를 숭상하면서 경전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들이 도처에서 나타나니, 장서각에서 경전에 관한 논쟁으로 갈리고 파벌을 만들어 다른 이를 공격하며[黨同伐異] 자신들의 주장을 지키려는 문인들이 일시에 성행하게 되었다. 왕망(王莽, B.C. 45~23)이 선양의 형식으로 정권을 찬탈하여 신나라(新)를 세우자, 충성스럽고 의로운 사람들은 그 정권에서 관직을 맡는 것을 치욕으로 여기고 마침내 산림에 은거하는 것을 영광으로 여기고, 청빈과 곤궁을 부귀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나라의 중흥에 운이 따라 한나라의 덕이 다시 열렸지만(후한의 건국), 처신을 강구하고 그 방법을 모색하는 풍조는 갈수록 치열해지고 관직을 거부하고 살아가는 절개 또한 당시 사람들에게 중시되었다. 환제(桓帝)와 영제(靈帝) 시기에 군주는 탐욕과 무능에 빠져 정치가 혼란해졌고 나라의 대사는 환관에게 맡겨져 정직한 선비(士人)들은 환관과 함께 관직을 수행하는 것을 치욕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므로 백성들이 분노하여 항의하고 은거하는 자들도 조정을 비판하자 이에 명성 있는 자들이 도처에서 부응하였으며, 공경(公卿)에 대해 품평하고 조정에 대해서도 마음대로 평가하는 독선의 풍조가 유행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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