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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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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ven Zieg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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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xabay
狡兎三窟
교활한 토끼는 세 개의 굴을 판다는 뜻으로, 재난이 발생하기 전에 미리 대비한다는 말입니다. 비슷한 말로 유비무환(有備無患), 거안사위(居安思危)가 있습니다.
교토삼굴은 중국 전국시대의 제나라(齊)의 왕족인 [.tag.p]##맹상군(孟嘗君)##의 식객 [.tag.p]##풍훤(馮諼)##이 맹상군이 조카인 [.tag.p]##민왕(湣王, 재위 B.C. 301~B.C. 284)##에게 버림당하자, 재앙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미리 여러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고 경계한 고사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제나라 사람 풍훤은 가난하고 궁핍하여 스스로 살아갈 수 없게 되자, 아는 사람을 통해 맹상군에게 문하에서 기식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해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대접이 소홀하다고 생각한 풍훤은 음식에 생선이 없다거나 외출할 때 타고 다닐 수레가 없다는 등 자신의 칼을 두드리며 탄식조로 노래하였고[車魚之歎], 이 상황을 수하로부터 전해 들은 맹상군은 그때마다 그의 요구를 모두 들어주라고 명하였습니다. 그럴수록 맹상군의 수하들은 그를 미워하며 탐욕스럽고 만족할 줄 모르는 놈이라고 욕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맹상군은 문하의 식객들에게 장부를 내보이며 물었습니다. [role=dialog] [verse] 맹상군: 누가 설(薛) 땅에 가서 나를 위해 빚을 받아올 회계에 능한 사람이 있는가?” 풍훤: (이름을 쓰고서) 제가 할 수 있습니다. 맹상군: (누군가 하는 표정으로) 누구인가? 수하: ‘칼아, 돌아가자’라고 노래하던 자입니다. 맹상군: (웃으며) 그대는 참으로 유능한 사람인데, 내가 잊고서 일찍 만나 보질 못했구려. 맹상군이 풍훤을 따로 불러 보고서 사과하였습니다. [role=dialog] [verse] 맹상군: 내가 나랏일로 피곤하고 근심하느라 마음이 혼란스럽소. 성격도 나약하고 어리석은 데다 나랏일에 얽매이다 보니 선생에게 잘못을 저질렀소이다. 선생은 이 일을 수치라 여기지 마시고 설 땅에 가서 빚을 받아 주시겠습니까? 풍훤: 알겠습니다. 수레를 준비하고 행장을 꾸리고서 빚문서를 실어 떠나는데, 풍훤이 하직 인사를 하며 말하였습니다. [role=dialog] [verse] 풍훤: 빚을 다 받으면 무엇을 사서 돌아올까요? 맹상군: 그대가 보기에 우리 집에 부족한 것이면 되오. 풍훤은 수레를 몰아 설 땅으로 가서는 관리를 시켜 백성 중에 갚아야 할 채무가 있는 자들을 모두 불러오게 하고 문서를 맞춰보았습니다. 문서 내용이 모두 일치하자 일어나서 맹상군의 명을 사칭해 빚문서를 백성들에게 나눠주고 태워버리게 하니, 백성들이 모두 만세를 불렀습니다. 풍훤은 말을 달려 제나라에 도착하자마자, 새벽에 맹상군 뵙기를 청하였습니다. 맹상군은 그가 빨리 돌아온 것을 괴이하게 여기면서 의관을 갖추고 만나 물었습니다. [role=dialog] [verse] 맹상군: 빚은 모두 받았소? 어떻게 이렇게 빨리 돌아왔소? 풍훤: 모두 받았습니다. 맹상군: 무엇을 사서 돌아왔소? 풍훤: 맹상군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대가 보기에 우리 집안에 부족한 것이면 된다’고 하셨기에 생각해 보니 공의 집안에는 진기한 보물이 가득 쌓여 있고, 개와 말은 바깥 마구간에 가득 차 있으며, 미녀들은 뒤채에 가득하니 공의 집안에 부족한 것이라고는 ‘대의(大義)’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생각 끝에 공을 위해 ‘대의’를 사 왔습니다. 맹상군: 의를 사 오다니 무슨 말이오? 풍훤: 지금 공께서는 작은 설 땅을 봉지로 갖고 계신데 그곳 백성을 자식처럼 사랑해 주지 않고 봉지라는 이유로 이자놀이하고 있습니다. 제가 공의 명을 사칭해 빚문서를 백성들에게 나눠주고 태워버리게 하였더니, 백성들이 모두 만세를 불렀습니다. 이것이 제가 당신에게 ‘대의’를 사 왔다고 한 이유입니다. 맹상군: (기분 나빠하며) 알겠소. 선생은 가서 쉬시오. 그로부터 1년 후, 새로 즉위한 민왕이 맹상군에게 말하였습니다. [role=dialog] [verse] “과인은 감히 아버지(宣王)의 신하를 과인의 신하로 삼을 수 없습니다.” 더 이상 조정에 남아 있을 수 없게 된 맹상군은 도읍을 떠나 봉지인 설 땅으로 가야 했는데, 설 땅까지 아직 1백 리나 남았을 무렵 설 땅 백성들이 노약자를 부축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도중에서 맹상군을 영접하였습니다. 그러자 맹상군이 풍훤을 돌아보며 말하였습니다. [role=dialog] [verse] 맹상군: 선생께서 저를 위해 사 온 ‘의’를 마침내 오늘 보는구려. 풍훤: 교활한 토끼라도 굴이 세 개[狡兎三窟]는 있어야 겨우 죽음을 면할 수 있을 뿐입니다. 지금 공께서는 하나의 굴이 있을 뿐이니 아직 베개를 높이 베고 편히 누울 처지[高枕而臥]가 아닙니다. 공을 위해 두 개의 굴을 더 파 드리겠습니다. 맹상군은 풍훤에게 수레 50대와 금 500근을 주어 서쪽의 양나라(梁)footnote:[위(魏)로도 부름.]로 가서 유세하게 하였습니다. 풍훤이 [.tag.p]##혜왕(惠王)##footnote:[위(魏) 혜왕의 재위 시기는 기원전 369년~319년으로 제나라 민왕의 재위 시기인 기원전 301년~284년과는 맞지 않는다. 정황으로 보아 혜왕은 양왕(襄王, 재위 B.C. 319~B.C. 296) 혹은 소왕(昭王, 재위 B.C. 296~B.C. 277)의 오기로 보인다.]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role=dialog] [verse] “제나라가 그 나라의 대신 맹상군을 제후들에게 내주었습니다. 먼저 그를 영입하는 제후가 부강해질 것입니다” 이에 혜왕은 제일 높은 승상의 자리를 비우고 원래의 승상은 상장군으로 삼은 뒤에 사자에게 황금 1천 근과 수레 100대를 딸려 보내 맹상군을 모셔오게 하였습니다. 풍훤은 사자보다 먼저 달려와 맹상군에게 경계의 말을 하였습니다. [role=dialog] [verse] “1천 근의 황금은 막대한 예물이고 100대의 수레는 성대한 사절임을 드러낸 것이니, 제나라도 이미 이 소문을 들었을 것입니다.” 결국 양나라 사자가 세 번이나 왕복하였지만 맹상군은 굳게 사양하며 가지 않았습니다. 제나라 민왕이 이 소식을 듣고는 왕과 신하 모두 두려워하였고, 태부(太傅)를 보내어 황금 1천 근과 무늬로 장식하고 4필의 말이 끄는 수레 2대, 몸에 차는 칼 한 자루, 밀봉한 편지를 가져가게 해서 맹상군에게 이렇게 사과하였습니다. [role=dialog] [verse] “과인이 복이 없어서 종묘에 재앙을 입히고 아첨하는 신하들에게 빠져 그대에게 죄를 지었으니, 과인은 나라를 다스리기에 부족합니다. 그대가 선왕의 종묘를 생각하여 잠시 제나라로 돌아와 만민을 다스려 주시겠습니까?” 풍훤이 다시 맹상군에게 경계하였습니다. [role=dialog] [verse] “선왕의 제기(祭器)를 요청하시고 설 땅에 종묘를 세우십시오.” 설 땅에 종묘가 완성되자 풍훤이 맹상군에게 보고하였습니다. [role=dialog] [verse] “세 개의 굴이 이제 완성되었으니, 공께서는 잠시 베개를 높이 베고 즐기셔도 됩니다[高枕爲樂].” 맹상군이 제나라의 재상으로 수십 년 있으면서 아주 작은 재앙조차 겪지 않았던 것은 모두 풍훤의 계책 때문이었습니다. 여기에서 풍훤이 말한 교토삼굴이란 첫째로 봉지인 설 땅 사람들의 인심을 얻어 재기의 발판을 삼고 둘째로 세상의 관심을 맹상군에게 쏠리게 하여 군주의 마음을 회유하고 재상으로 복직시켰으며 셋째로 군권의 상징인 종묘를 왕이 있는 도읍이 아니라 신하인 자신의 봉지 설 땅에 세우게 함으로써 권위를 확보한 것, 이 세 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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