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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군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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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군만마
千軍萬馬
천 명의 군사와 만 마리의 말이라는 뜻으로,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막강한 세력을 이르는 말입니다.
천군만마는 중국 남북조(南北朝)시대에 아무리 군사 수가 많아도 양나라(梁) 장수 진경지(陳慶之, 484~539)를 대적하지 말라는 노래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진경지는 어릴 적부터 후일 양나라를 건국한 고조(高祖)와 어울리며 그를 따랐습니다. 고조가 양나라를 세운 지 20여 년이 흘러 북위(北魏)의 북해왕(北海王) 원호(元顥)가 양나라에 망명하여 북위의 황위를 되찾기 위해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무제는 이를 받아들여 진경지에게 원호를 돕게 했습니다. 진경지는 군대를 이끌고 북위를 공격하여 형성(滎城)을 빼앗았습니다. 수양(睢陽)에 이르자, 북위는 구대천(丘大千)에게 7만 명의 병사를 주어 막게 했지만, 진경지는 아침부터 저녁 사이에 3개의 요새를 함락시키고 구대천에게 항복을 받았습니다. 이어서 북위의 정동장군(征東將軍) 제음왕(濟陰王) 원휘업(元暉業)이 2만 명을 이끌고 왔지만, 진경지는 원휘업을 사로잡고 마차 7,800량을 얻는 전과를 올렸습니다. 그러자 북위의 좌복야(左僕射) 양욱(楊昱), 서아왕(西阿王) 원경(元慶), 무군장군(撫軍將軍) 원현공(元顯恭) 등이 7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형양(滎陽)에 주둔하여 원호와 진경지를 막아섰습니다. 북위의 병사들은 정예였고, 성은 험준하고 견고해 진경지가 여러 번 공격했으나, 쉽게 함락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원천목(元天穆) 등이 이끄는 북위의 증원군이 속속 도착하여 병력이 30만 명에 달했습니다. 양나라 군사들은 두려움에 휩싸였습니다. 이에 진경지는 군사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이곳에 온 이후로 성을 빼앗고 땅을 차지한 것이 적지 않으며, 그대들이 북위 사람들의 부모 형제를 죽이고 자녀들을 약탈한 숫자 또한 헤아릴 수 없다. 원천목의 군사들은 모두 원수를 갚으려 할 것이다. 우리는 겨우 7천 명이고, 적은 30만 명이 넘는다. 지금의 형세로는 우리의 살아남기 어렵다. 나는 적의 기병과 평원에서 싸울 힘이 없으니, 적이 우리 앞에 이르기 전에 적의 성곽과 보루를 빼앗아야 한다. 그대들은 여우처럼 의심하지 말고, 적에게 스스로를 먹잇감으로 내주어라.” 양나라 군사들은 진경지의 말에 용기를 얻어 첫 번째 북소리에 맞춰 성벽을 타고 넘어 들어가 승리했습니다. 성 밖의 북위 군사들이 합세하려 하자, 진경지는 기병 3천 명을 이끌고 맞서 싸워 크게 이겼습니다. 북위의 기병장 노안(魯安)은 항복했고, 원천목 등 장수들은 혼자 말 타고 도망쳤습니다. 양나라 군대가 호뢰(虎牢)로 진군하자 북위의 장수 이주세륭(爾礫世隆)은 성을 버리고 도망쳤고, 북위의 원자 유(元子 攸)도 달아났습니다. 마침내 원호는 황제에 올라 연호를 고치고 사면령을 내렸으며, 진경지를 시중(侍中), 거기대장군(車騎大將軍), 좌광록대부(左光祿大夫)에 임명하고 1만 호의 식읍을 하사했습니다. 이후 북위의 대장군 상당왕 원천목 등이 4만 명의 병사를 이끌고 대량(大樑)을 공격하여 함락시킨 후, 2만 명의 군사로 호뢰를 점거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진경지가 기습하자 모두 항복했고, 원천목과 10여 기의 병사는 북쪽으로 도망쳤습니다. 진경지 휘하의 군사들은 모두 하얀 옷[白袍]을 입고 가는 곳마다 상대를 굴복시켰습니다. 이에 낙양(洛陽)에서는 다음과 같은 노래가 불렸습니다. “이름난 사령관이나 대장일지라도 굳게 지키지 말고, 천군만마[千軍萬馬]의 대군일지라도 백포(진경지의 부대)를 피하라.” 진경지는 안현(銨縣)에서 낙양에 이르기까지 140일 동안 32개의 성을 함락시키고 47번의 전투에서 승리하며, 그를 막는 자가 아무도 없었습니다. 진경지에게 군사의 숫자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는 7천 명의 적은 군사로 30만 명이 넘는 북위의 대군을 물리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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